30 - 2012 디읽쓰1 Prologue

PUBLISHED 2012. 6. 8. 13:45
POSTED IN 매일매일

2012.06.05 30 


디자인 읽기와 쓰기1 <Prologue>


‘일주일에 세시간씩, 열여섯 번을 만나는 그 길고도 짧았던 시간동안 과연 우리에게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한 학기 수업을 마무리하며 그동안의 시간을 돌이켜 볼 때 묻게되는 질문입니다. ‘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좀처럼 힘듭니다. 삶의 목표나 기로가 바뀌고 뒤집히는 것과 같은 ‘사건’ 은 일생일대 몇 번 마주하기 힘든 순간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기대하는 마음은 버릴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작은 충돌이 있진 않았을까? 그러면서 언젠가 발아할 씨앗이 심겨지지 않았을까? 그것이 어려웠다면 심겨질 씨앗을 위해 땅을 고르는 작업이라도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과 우려가 들쑥날쑥 고개를 내밉니다.


우리는 총 세 편의 글을 썼습니다. 각각의 주제를 구상하며 나름의 기대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 나는 누구인가>를 쓰며 스스로를 거리두어 보기를,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어떤 것>을 쓰며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거리두어 보기를, <디자인>을 쓰며 ‘디자인’을 거리두어 보기를 바랬습니다. 첫 시간, 다함께 코앞의 강의계획서를 점점 멀리 떨어뜨려보며 전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는지요? 가까이 볼 때는 부옇게 잘 보이지 않던 글자들이 거리를 두고 볼 때 명확해지는 것처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 말이죠.


거리 두기에 글은 아주 좋은 수단입니다. ‘내가 원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모두가 그렇게 보는데 다른 관점은 없을까?’ 물으며, 이리 저리 뒤엉켜있던 생각을 돌아보고 논리적으로 정리하게 됩니다. 물론 한 편의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아요. 그 쉽지 않은 일을 위해 끝까지 애쓴 강민성, 고동희, 김동현, 김주성, 김지은, 김태욱, 김혜미, 방현지, 양수현, 김은영, 문혜진, 윤태웅, 이병준, 최지수, 최형욱, 전재형, 정재하, 한형진 총 18명의 작가님,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가님들께 애정이 있는 한명의 독자로서, 작가님들의 연필 끝에서 지어진 글을 읽고 듣고, 또 나누며 참 즐거웠고 때로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읽고 쓰는 것이 누군가에는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읽읍시다.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니까요. 꾸준히 쓰기도 합시다. 이미 정해진 길, 이미 정해진 모습, 이미 정해진 세상을 끊임없이 거리두어 보려면 말이죠. 이런 말을 한 사람도 있답니다.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2012. 6 

채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