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 미용사 선생님

PUBLISHED 2012. 6. 6. 18:33
POSTED IN 매일매일

2012.06.04 29 미용사 선생님


"나 머리자를까?" 하고 세 명의 지인들에게 물어본 것 같다. 그런데 질문을 받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여름인데..."라는 대답을 했다. 그 말은, 여름이니까 머리를 묶는 것이 더 시원할테고 자르면 묶지 못하기 때문에 더울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사실 "그래 잘라!"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을 했다. 자를까 말까에 대한 의견이 아닌, 자르고 싶다는 내 의견의 동의를 구하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세명, 아무도 동의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오늘 머리를 잘랐다. 


벤야민의 글이 떠오르는데 그대로 옮겨쓸만한 기억력은 되지 못한다. 사람들이 결정을 앞두고 주위에 충고를 구하는 것은, 이미 다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할만한 약간의 동의를 얻기 위함이라는 내용이었다. 동의를 얻지 못해도 생각한대로 실행하는 결단. 그것이 "누가 뭐래도 나는 내 갈길을 간다"의 마인드일까? 


내가 몇 번 머리를 자른 미용사(요즘에는 '디자이너'라고 한다)선생님을 생각하고 갔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관뒀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운 선생님에게 머리를 맡기게 되었다. 딱히 스타일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터라 지금 머리모양 그대로 길이를 잘라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원래 머리가 길었는데 어느 날 이렇게 잘랐더니 주위에서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구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머리는 <대중적>이죠.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이 영향을 받으니. 그런면에서 우리는 <예술가>가 아니야..." 예술가?! 미용사의 입에서 이 단어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분은 젊을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머리를 해주었다고 한다. 손님을 딱 보았을 때 잘 어울릴만한 스타일이나 유행을 반영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손님이 원하는 것, 손님의 '가려운 곳'을 긁은 것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표현한 <대중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것인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헤어쇼에서 접하게 되는 유명 헤어디자이너들의 작품이나 최신 유행과는 달리, 사람들 개개인의 취향이나 원하는 바를 지칭하는 것이다. <대중적>인 머리 손질을 할 때는 손님의 머리에 자신의 스타일이나 철학을 담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그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 


그를 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손님들의 머리를 손질 하다가는 헤어-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렇게 될 때 먹고 사는 문제에 타격이 간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손님들의 취향을 존중하고 따라주는 것이 자신에게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내게는 그 미용사 선생님의 고민이 조금 감동적이었다. 예술가처럼 자신만의 표현능력을 펼치고 싶어했지만 그것의 현실 불가능성을 깨달았다. 미용사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이와 같은 인식은 자기의 일의 방향성과 가치에 대하여 고민을 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그가 그 인식에 완벽하게 순응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공부하며 자기 일에 대해 성찰할 것이며, 본래 가지고 있던 표현에 대한 갈망을 펼칠 또 다른 길을 찾을 것 같다. 느낌이 그랬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길을 간다"는 아주 힘든 일이다. 그 고집을 한 순간도 꺾지 않고 살아가기에 우리의 현실은 굉장히 크다. 그런면에서 "좋게 좋게"하며 큰 충돌없이 무난하게 가는 길도 허용되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각자 주어진 그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협'에 민감하 사람, 어떻게 해서든 새 길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그 길은 때로는 고통스럽고 외롭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을 통해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