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푸르른 틈새>

PUBLISHED 2010. 6. 16. 17:05
POSTED IN 보관용


나는 '잘 들어, 응?' 하면서 내 존재를 바꾸는 꿈을 꾼다. 나는 '......가 되는거야' 하면서 바뀐 내 존재를 명명한다. 이름을 얻는순간 나는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는 오만으로 찬란히 비상한다. 나는 개체가 아니라 이름, 개체들의 영원한 재생산을 통해 불멸하는 이름이 된 것이라 믿는다. 나는 흐린 날엔 구름이 되고, 비가개면 무지개가 되고, 밤이오면 암흑이 되고, 해뜰무렵 새벽별이 되고, 갇히면 죄수가 되고, 탈출하면 탈옥수가 되고, 식탁에선 음식이 되고, 취하면 주정뱅이가 되고, 거울 앞에선 나르시스가 되고, 못을 박을 땐 아찔한 정신이 되고......

툭하면 나를 질책하기 좋아하는 방안의 벌레들이 내 꿈을 듣다말고 아우성친다. 그들은 이런 동어반복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내 욕망은 무한한 복제를 원하는데, 복제속에서나마 사무치게 세상과 조우하려 하는데, 도시 이 작것들은 이런 처절한 자위의 놀이가 왜 필요한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될 수 있는 한 양껏 모든 일반명사가 되고자 하는 내 욕망은, 허무를 견디기 위한 혹은 허무를 견디지 못하는 백과사전적 발버둥이다. 나는 내 꿈의 문법을 원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나는 양에 들려있다. 나는 내 꿈이고, 내 과거이고, 내 현재이고, 내 모든 것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정작 그 와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고유한 내 자신이다. 혹시 내게 고유한 것이 있기나 했다면. 설혹 없었다면 그 고유한 없음조차도 이 와중에 흔적 없이 사라진다. 나는 '내 모든 것'이 되고자 하지만 남은 것은 '내'가 떨어져 나간 것, 즉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일 뿐이다.

곰보 유리문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젖은 방에는 닥치는대로 짓이겨진 이름들만 가득하다.



권여선, <푸르른 틈새>, pp.15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