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2 27 경험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은 경험으로 삶을 시작 한다. 세상에 처음 눈을 뜬 경험, 엉덩이를 맞고 울음을 터뜨린 경험, 간호사의 품에 안긴 경험, 이불에 쌓인 경험, 물에 담긴 경험 등 수많은 경험으로 이 땅에서의 삶이 시작된다. 이후의 삶도 수많은 경험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 경험들은 근본적으로는 '주어진 것'이다. 태어나게 된 부모, 부모에 의해 만나게 되는 환경, 문화 등 삶의 근간이 되는 시공간을 원하는대로 선택할 수 없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작은 선택들을 스스로 하는 경우들이 있지만, 그것은 주어진 시공간 안에서의 선택이기에 근본적으로는 피동적이다.
이와 같은 경험의 연속은 어떤 '틀'을 만들어낸다. 이는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 그 상황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앞으로의 또 다른 선택을 내리고 행동하는 데 쓰이는 틀이다. 예컨대, 부모에게서 버림 받거나 폭행을 당한 경험은 그 이후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 다시 버림받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경험이 아니더라도, 작든 크든 하게 되는 모든 경험은 이후의 삶의 모습과 흘러가는 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된다. 자신의 경험이 자신에게 전부이다. 하지만 그 경험은 한계로 작동한다. 사람은 경험에 '갇혀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며, 이게 맞고 이게 틀리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 경험 안에서의 확증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방법을 써도 자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길이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경험하지 않는 한, 자기가 경험하는 한계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새로운 것,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쉼없이 받아들인다 해도, 결국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입장이 완전히 옳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이 입장, 저 입장 모두 특정한 사람의 것이고, 그 입장은 그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사람에 대한 이해는 불완전하다. 그리고 사람의 세상에 대한 이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사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경험의 감옥!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안에 있는 우리는 자유를 갈망한다. 맞아, 아니야, 무엇이 옳을까, 틀린 것일까 끝없이 논쟁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완전한 정답, 완전한 옳음에 대한 지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도 '강요'하거나 '주장'하거나 '설득'하거나 심지어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모든 것이 옳은 상황이 가능하다면, 옳음과 그름이라는 개념은 생겨날 이유가 없다. 불완전한 경험의 감옥, 하지만 완전한 옳음이라는 자유에 대한 갈망. 이 지점에서 요청할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 외부의 존재, 그리고 그의 (실제적)권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