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8 22 이모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일어났는데 잠이 깨질 않았다. 그래서 잠시 침대에 엎드려 스마트 폰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밥먹으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뒤에서 내 허벅지를 쥐면서 말했다. "아이고 어쩌냐, 경남이 이모 다리처럼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잠이 확 깨면서 혈압이 올랐다. "아악!"
경남이 이모는 외가댁의 막내 이모이다. 이모는 뚱뚱하다. 그냥 뚱뚱한 게 아니라 아주 뚱뚱하다. 전해 듣기로는 어릴 땐 뚱뚱하지 않았는데 언젠가 한약을 잘 못 먹은 부작용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들었다. 이모는 불혹을 훌쩍 넘어 쉰을 바라보는 나이인제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이모는 외가댁의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언니들은(이모들은) 모였다 하면 꼭 한번씩 이모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요즘 운동 좀 하나? 매일 꾸준히 운동해야 된데이', '니 살 더 찐 것 같다? 어짜노...', 어느날은, '니 요즘 좀 빠진 것 같네? 운동 좀 했나?'
이모들은 막내이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당연시 했다. 우리가 보기에 '문제'가 있으니 그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이 태도에는 막내 이모가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마치 그 조언들을 제대로 듣고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모들은 돌아가며 조언을 했고 막내 이모가 '문제적인 존재'임을,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막내이모에게 결국 모든 책임이 있음을 확인시켰다. 외부에서 '문제'를 재차 되새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그 존재는 외부에 의해 '문제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뚱뚱한 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뚱뚱함이 한 존재의 가치를 훼손시키는가? 뚱뚱할 때 살아가는 것이 조금 불편하거나 건강이 위험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세상의 정의나 평화를 어지럽히는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진리의 문제보다 시선의 문제가 더 크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끝없이 의식하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 판단하는 기준을 마치 진리처럼 여긴다. 그리고 그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도 들이댄다. 따라서 함께 살고 있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는 존재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 모습을 '제 뜻대로' 혹은 '세상의 기준'대로 반드시 고쳐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있는 것이다.
'다 널 위해서'라는 말을 덧붙이며 사랑으로 미화시키는 말과 행동이 사실상 폭력이 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다 널 위해서'라는 말에 다른 사람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모습으로 조각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숨겨져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막내이모는 이모들의 그 이야기들을 들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문득, 이모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모는 자신의 모습에 걱정과 불만을 매번 표하는 가족들과 세상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 어떻게 그 '폭력의' 시간을 견뎌냈을까? 견디고 있을까? ... "이모, 또 누가 그러면 "그러는 언니들은 뭐 그렇게 잘났다고!"하며 소리 한번 확 질러버리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