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지를 꺼내보며, 또 다시 주어진 시작을 기대해본다.
어느새 열다섯번째, 마지막 수업이네요. 세달 전,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마음으로 만났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무언가 끝날 때 즈음이 되면 항상 상투적으로 내뱉게 되는 ‘엇그제 같다’는 말이지만,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은 항상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이지요.
이제와 고백하지만 이번 강의는 제 생애 첫번째 대학강의였습니다. 이미 알고있거나 느끼고 있었던 분도 계셨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또 그만큼 서툴렀던 것 같아요. 저에게 이 강의는 디자인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후 즐거운 대학원 생활을 보낸지 3년째 되는 해 찾아온 '높은 산'이었어요.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지만 넘지 않으면 더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하게, 길 가운데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던 높은 산이었던 거죠. 왜 산이었냐구요, 여러분도 비슷한 입장이기 때문에 잘 아시겠지만,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쉽고 재밌는 일만은 아니잖아요. 강의 내용을 계획하는 것의 어려움, 실수에 대한 걱정,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의 압박스러움 등, 그만 두고 싶게 만드는 어려운 장애물들이 곳곳에 산재해있죠.
피할 방법은 없었기에 어그적대는 걸음으로 산을 올랐는데, 나도 모르게 금세 넘어와 버렸네요. 그런데 어그적대며 걸었던 시간이, 지나고보니 너무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내 걸음에 집중할 때는 모든 게 힘겹게만 느껴졌지만, 사실 흐르는 땀을 식혀주었던 바람과 지저귀는 새 소리와 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곡물 소리도, 또한 훌륭한 그늘이 되어주었던 울창한 숲.. 모두가 가슴에 고스란히 선물이 되어 남았거든요. 아, 너무 은유적으로 표현했죠! 그 '선물'들은 바로 여러분과 함께 한 시간을 뜻하는거예요.
강사에게서 학생에게로의 단방향으로 지식이 전달되는 일방적인 수업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대신 '공동체'가 되어 진리를 추구하는 수업이 되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머튼의 "교육의 목적은 한 사람에게, 자신과 세계의 관련성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정의하는 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세계가 이미 가공해 놓은 정의나, 그 개인이 멋대로 만들어 내는 정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 처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 속에서 어느 것에도 휩쓸리지 않는 <자기 자신>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 수업이 되길 원했습니다. 저의 그 바람이 여러분에게 얼마만큼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여러 부분에 있어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지요.
아쉬움이 조금 일찍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아쉬움의 크기를 미리 줄여볼 수 있을텐데요. 그러나 아쉬움은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끝이 되어서야 찾아옵니다. 미숙했던 저의 수업에 동참해주어서 감사합니다. 게다가 때마다 열심히 임해주어서 더욱더 감사합니다. 저의 생애 첫번 째 강의의 '동지'가 되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마도 이곳, 교원대에서의 2010년 2학기의 시간은 저에게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것 같습니다.
2010.12.10 채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