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6 20 만남들
여섯시 반쯤 눈이 떠졌다. 이불 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머물러 있다가 7시 조금 전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침대 오른편 벽에 기대 앉아서 책을 보았다. 어제 알았다. 일주일 정도 책을 거의 읽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아이패드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어제는 아무 책도 가지고 나오지 않는 바람에 글을 쓰고 논문 쓰고 나니 할 게 없어서, 동네 서점에 들렀었다.
인문 서가에 가니 강의 때 잠깐 들었던 엔터니 플루의 <존재하는 신>이 꽂혀있는 게 보였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몇십년간 무신론자로 살다가 죽기 몇년 전인 2004년, 신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한다. 왜 어릴적 무신론자가 되었었는지 개인적 배경을 말하고 있는 앞부분을 약간 보았다. 어릴적부터 독실한 감리교 목사 아버지의 영향아래 있었지만 그는 그런 믿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었다고 한다. 보다가 뒤쪽으로 책장을 넘겨 플루의 질문에 대한 N.T 라이트의 대답을 보았다. 플루는 라이트의 대답이 아주 인상깊다는 말을 가장 뒤에 붙였다.
책을 다시 꽂으려 하는데 슬라보예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을 발견하고 서문을 조금 보았다. 파란펜으로는 진실만을 말하고 빨간펜으로는 거짓만을 말하겠다는 조건을 건 사람, 그가 보낸 편지에는 모든 게 괜찮다는 내용이 파란펜으로 쓰여있었는데 가장 마지막 문장에 '그런데 여기서는 빨간펜을 구할 수 없네'라는 그 암호와 같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빨간펜이 없기 때문에 거짓을 말할 수 없는 현실. 뒤이어 자유주의에 대해 말할 때 결국 자유는 사라지며, 민주주의에 대해 강조할 때 민주주의는 없는 것이다, 특정 체제 안에서 체제의 완전한 모습을 상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해도 결국 그 체제 안에 갇혀있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의 글은 언제나 아리송하지만 나중에 읽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놓았다.
아침에는 읽다가 멈추었던 <톰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의 한 장인, <6. 이스라엘>을 읽었다. 유대민족은 유배와 귀환을 반복하다가, 하나님과 정말로 멀리 떨어진 것 같은 바벨론 포로시기에 자신들의 이야기(구약)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품었던 소망은 그들을 다스릴 완전한 '왕',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 하나님과 사람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기 위한 '율법', 회복과 치유가 이루어진 '새로운 창조세계'로 정리될 수 있는데, 이 소망은 결국 한 개인 예수로 연결된다(여기서 어제 <존재하는 신>에서 보았던 내용이 반복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예수는 다음 장에서.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것들, 그 '만남'은 모두 의미가 있다. 이는 삶의 '결'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무엇과 누구와 만나느냐에 따라 그 결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고 만남들이 계속적으로 쌓여감에 따라 그 결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혼자,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끝없이 계속되는 만남으로 살려진다. 그런 면에서 책과의 만남, 글과의 만남도 작게 보일지라도 참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