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자아아 세계를 초월적 원천으로부터 떼어놓으면, 자아와 세계는 서로를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려는 끝없는 힘겨루기 속에 갇혀 버리고 만다. 사랑에게 그들 자신을 알도록 허락하지 않는 자아와 세계는 왜곡된 자아상을 갖고 있기에, 그러한 힘겨루기는 늘 부자유와 비진리만을 낳을 뿐이다. 그러한 교육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왜곡을 세계에 강제하는 사람들을 낳거나, 세계가 자신을 왜곡시키는 것에 굴복해 버리는 사람들을 낳을 뿐이다. (61,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너무도 명확하게 나의 생각을 간파하고 있는 이 문단을 읽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하나님의 형상을 모르거나 외면한다면 우리는 이곳저곳에 포진해있는 왜곡된 형상을 덮어쓰게 된다. 그리고 그 왜곡된 형상 속에서 무언가 엉키고 꼬여있는 부자유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게다가 또 다른 사람에게 왜곡을 전염시키거나, 혹은 외부의 왜곡에 계속 휘둘리게된다... 이 상태에서는 일순간의 행복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왜곡 속에서는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삶에는 아폴론적인 질서도 필요하지만, 디오니소스적인 일탈과 열정도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일탈과 열정도 더 큰 질서에의 통합을 지향하는 과정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더 큰 중심을 향한 솟구침이 아니라면 곤란한 일입니다. (192,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라는 김기석 목사님의 글도 생각났다. 초월적 원천, 더 큰 중심,.. 사랑.. 하나님. 인간이 매여야 하는 유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