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y
2012.05.11
스타벅스에 오후 늦게 나가 앉아 있었다. 집에 카프카 소설집이 하나 있길래 챙겨가서 보고있었다. <변신>이 가장 처음이었고 바로 다음은 <유형지에서>라는 단편소설이었다. 변신은 이전에 봤으니 오늘은 이거다, 하고 펼쳤다. 한 탐험가가 어떤 나라의 유형지에 가게되었는데, 그 곳의 장교에게 잔인한 살인 도구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게 초반부 내용이었다. 다 읽지 못하고 낮잠의 습격에 잠시 엎드렸다.
아주 잠깐의 혼절(?) 후, 깨어나 보니 왼편 창가의 bar자리가 비었기에 그리로 옮겼다. 오른편 보다 조금 더 안락하다. 앉아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카톡이 왔다. 교회의 y였다. 오늘도 스타벅스냐고, 뭐하고 있냐고, 묻다가 갑자기 "look back!" 하길래 뒤돌아봤더니 구석에 나를 보고 있는 까만 y의 얼굴이 보였다. 뒷모습이 나 같아서 긴가민가하다가 카톡을 보낸 거란다. y가 처음 카톡을 보낸 시간이 오후 4시 40분인데, 10시를 훌쩍 넘은 시간까지 한 자리에 앉아 그대로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손으로 세어보니 무려 6시간이다. 물론 나는 주로 들었고 y는 이야기했다.
y는 취업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이 시간이 힘겨운 듯했다. 그는 그동안 지금 자기가 하려고 하는 종류의 취업은 생각도 안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서류상에 쓸 '한 줄'이 없었다. 자기소개서든 삶의 비전이든 회사 생활에의 포부든, 갑자기 익숙지 않은 글들을 쓰려고 하니 너무 어려웠다. 기존에 추구하던 것과는 다른 이런 시도를 하게 된 주된 이유는 여자 친구였다. 그 관계와 함께 미래를 생각하다 보니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시작된 압박과 스트레스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그런 상황이었다.
20대 청년의 슬프고 우울한 자화상을 본 것 같다. 엄청난 스펙들을 보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서류에 쓸 만한 그 '한 줄'이 없어서 좌절하는 청년. 이것이 정답이 아니란 거는 안다. 그러나 막상 그 길로 가지 않으려고 하면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결국엔 여러 생각들로 합리화가 시작된다. '그래도 먹고 살려면', '일과 좋아하는 것은 별개로 하면 되고.', '나만 다른 길 갔다 나중에 후회하면 안되니까….'
이 시대에, 어떻게 해서도 쉽게 안락한 삶을 살기 어려운 게 뻔해 보이는 때, 결혼과 함께 찾아오는 빚더미가 산더미인 때, 이런 때 단지 꿈을 쫒아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허황되게 느껴진다. 사실 꿈을 쫒다가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할 때도 많으니까. 그렇다고 그것을 접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도 어렵다. 드러나는 모습이 아무리 좋아도 삶의 의미나 가치가 상실될 때는 돈이 없을 때 보다 더 사람답지 못하게 되니까.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모두에게 각자의 삶이 있고 길이 있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각자에게 각양각색이란 건 제대로 적용이 되어야 한다. 잔소리 듣기를 면피하는 데의 근거로만이 아니라,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모두가 가는 길을 가지 않는 것, 그러니까 조금 다른 길을 내딛는 게 내가 살아가야 할 모습이란 걸 깨닫는 데 근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어떤 길을 가든 난 너의 친구’라며 지지든, 쓴 소리든 해 줄 수 있는 변치 않는 존재들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