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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즐겁다

chae. 2012. 6. 1. 16:03

2012.05.30 24 즐겁다


"정말 즐겁네요..."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잠에 들었다. 공부하는 것이 새삼 즐거워졌다. 책을 보고 글쓰는 것, 논문을 쓰는 것, 모두가 즐겁다. 월요일은 하루종일 논문에 골몰해있었다. 화요일은 강의, 학교수업, 느헤미야 수업으로 하루가 꽉 찼는데 집에와서는 세미나 발제도 했다. 수요일은 아침에 일어나 못다한 발제를 정리하고, 학교로 와서 11시부터 6시까지 이어진 sadi 교수님의 특강을 들었다. 그리고 저녁-밤의 세미나. 수요일까지 이렇게 정신없이 달렸는데, "즐겁다".


많이 바빴던 언젠가, 그때도 '즐겁다'를 말할 때가 많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결핍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결핍은 나를 뒤덮을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았다. 자기 존재의 가치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한 그 결핍으로 인해,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망, 사랑받길 원하는 욕망, 특별하고 싶은 욕망이 내 몸 여기저기서 끓어댔다. 그리고 때때로 밖으로 분출되는 그 결핍은 즐거움을 완전히 앗아가버렸다.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만큼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추억할 수 있는 지난 시절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볼지,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받아들일지 그렇지 않을지, 에서의 완전한 자유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에 휘둘리고 있는 자신의 상태와 문제에 대하여 거리 두어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으로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이 자신을 뒤덮고 있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사람들에게로부터 얻는 인정과 사랑이 자기 존재의 뿌리가 되는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의 시도와 과정을 사람에게로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가 다 다르기 때문에 완벽하게 모든 사람에게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얻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사람과 세상에게서 얻는 인정의 이 불완전함은 그것이 인간으로서 추구할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에 자신의 모든 삶의 시간을 들이며 살아가는 박진영, 설교하는 데 모든 삶을 맞추어 살아가신다는 박목사님. 근래에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는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이들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삶도 아니었다. 주어진 자신의 시간동안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있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들을 맞추어간다. N.T.라이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기 자신만 알 수 있는,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알고 있는 소명을 따라가는 삶...'


소명은 어느 순간, "넌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음성으로 주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수없이 물었지만 단 한번도 확실한 대답을 얻은 적은 없다. 갑자기 알게 된 소명은 얼마만큼 힘이 있을까? 그러나 그와 다르게 서서히 움트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조금씩 자라나는 소명이 있다. 이것은 존재의 창조자, 주관자, 자신의 피조물과 함께 살아가기를 기뻐하시는 이의 부르심의 방법일까? ... 가슴이 말하는 그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그것을 따라 살아갈 때 찾아오는 즐거움. 내 요즘의 즐거움은 이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