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11
처음 문화컨텐츠 수업을 들으며 속으로 궁금한 게 있었다. 문화콘텐츠라는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화콘텐츠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한마디로 그 학문의 목적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 대답이 될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그러나 그것은 또 다시, 왜 터부시 되는 것을 드러내는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왔고, 나는 교수님께 여쭈어 볼 수 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대답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건 내가 생각하는 콘텐츠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터부시되는 모든 것이 아닌, 힘과 권력에 의해 가려져 있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동성애가 터부시 된다 해서 그것을 무조건 말해야 한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닙니다. 만약 권력의 지배를 위해 그 부분이 소외되고 가려진다면 그 것을 드러내는 게 옳다는 것이죠.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진실을 드러내는 것. 이라는 목표는 꽤나 정의롭게 들린다. 사실 이 세상에는 허다한 진실들이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묻혀지고 가리워져 있을테니까. 그러나 내 안의 궁금증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나아갔다.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당신의 의도는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진실을 드러내야 하는가?"...
팔머는 지식자체가 도덕을 가지고 있다고했다. 우리는 지식은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 중립적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사실 그 지식은 "인간 영혼 내부의 열정에서 시작"한다. 그 지식을 추구하고 정립하는 주체가 가지고 있는 열정, 목적, 의도가 지식의 도덕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호기심'과 '지배욕'에 대한 열정이 지식의 원천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는 이와 다른, '자비'와 '사랑'에서 기원하는 지식을 이야기한다. 사랑에서 비롯되는 지식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사랑에서 발원하는 지식의 목표는 깨어진 자아와 세계의 재연합과 재구축이다. 자비에서 나온 지식이 추구하는 바는 창조 세계의 착취와 조작이 아니라, 세계와 자신의 화해다. 자비를 동기로 가진 지성은, 마음이 사랑을 향해 뻗어 가듯 지식을 향해 뻗어 간다. 여기서 앎의 행위는 곧 사랑의 행위이며, 타자의 실재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포용하는 행위, 타자로 하여금 자신의 실재 속으로 들어와 그것을 포용하도록 허락하는 행위다. 이러한 앎에서는, 우리는 하나된 공동체의 지체들로서 남을 알고 나를 알리며, 우리의 앎은 공동체의 유대를 다시 엮어 주는 방법이 된다."
찢어지고 깨어진 자아와 세상을 화해시키고 연합하는 지식, 이것이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지식의 목표이고 역할이다. 이 부분을 알고보니, 문화콘텐츠를 통해 가리워진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 또한, 사랑의 동기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만약 사랑이 없다면, 그 행위는 단순히 권력에 대한 반발로 머무르지 않을까? 사랑 없는 서로다른 이념의 충돌은 곧 분쟁을 가지고 오지 않을까? 사랑 없는 혁명은 전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김기석 목사님은. "신앙인들에게 있어 투쟁의 뿌리는 기도여야 하고, 그 무기는 사랑이어야 하며, 투쟁의 전리품은 생명과 평화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단 하나의 욕망에서 비롯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겉으로 보기에 아주 선하게 보이는 행동도 파고 들어가면 어느정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리는 분이 살아계시고, 사랑하신다.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모습에서 절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는 소망을 품을 수 있고, 이 세상이 사랑으로 통치되는 그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으며, 실제적인 대리자가 되어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