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 2011. 8. 22. 11:32
00; ‘텅 빈 공공’이 아닌 ‘꽉 찬 공공’을 꿈꾸는, 디자인 사회

http://www.kcdf.kr/information/research_v.jsp?sBBS_NMBR=28&&iListCont=10&sSrchType=x&sSrchValu=&sBBS_CODE=18&sMasterNum=4&sTitle=  &iPage=1



‘공공’이라는 단어는 참 착하게 느껴진다. 단어가 품고 있는 ‘함께’, ‘공평하다’와 같은 뜻에서부터, 그 단어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는 공정하고 평등한 삶의 이미지, 그리고 동그랗게 오므린 입에서 통통 튀어나오는 부드러운 발음까지, 그다지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이와 같은 공공의 매력에 디자인이 사로잡혔던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디자인과 공공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에 와서 ‘공공’은 ‘디자인 사회’1)와 관련된 주제에서 압도적 비율로 등장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2009, 공공
2009년 우리 사회의 주요 디자인 키워드들은 <공공성>, <친환경>, <뉴미디어>의 큰 범주 아래, ‘공공디자인’, ‘유니버설디자인’, ‘그린디자인’, ‘에코디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 ‘느린 디자인’, ‘생태디자인’, ‘사용자친화 디자인’, ‘사용자중심 디자인’, ‘사용자참여 디자인’으로 정리된다. 이 키워드들은 뉴스 ․ 행사 ․ 학술연구 분야의, 디자인을 주제로 발행되거나 진행된 내용들에서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특별히 뉴스기사에서는 위의 키워드 중 ‘공공디자인’을 키워드로 하는 기사가 무려 83.1%로, 굉장히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2009년 매월마다 ‘공공’을 주제로 하는 행사가 이어졌고, 한 해 동안 디자인학회에 게재된 논문 중 공공디자인에 대한 연구는 24편으로써, 디자인 사회 주제와 관련된 논문(총 49편)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였다.

여러 키워드 중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한 공공디자인은, 실제로도 마치 신드롬처럼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속히 우리나라 상당부분의 지역을 휩쓸었다. 중앙정부로부터 시작되었던 사업의 효과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점점 각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로 그 사업이 확장되어간 것이다. 공공디자인과 관련하여 직접 실행되어온 내용들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도시의 도로 표지판, 가판대, 교량, 택시 등을 다시 디자인하고 디자인 거리를 조성하고 도시 곳곳에 광장과 공원, 놀이터 등을 만들었다. 도시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공공디자인조례를 제정하고 디자인 공무원 임용을 시작하기도 했으며, 공공디자인 학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게다가 공공디자인 심포지엄, 공공디자인 엑스포, 공공디자인대상, 공공디자인 공모전과 같은 큰 행사들도 지속적으로 열었다.

텅 빈 ‘00’?
그러나 갑자기 타오른 사랑에는 어김없이 열병이 찾아오는 것처럼, 과열되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에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새롭게 도시를 디자인 한다며 오랜 세월 축적되었던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한 순간 지워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또한 생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을 진행한다거나 그 지역에 삶의 거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지역의 특수성과 독특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가이드라인에 의존하며 획일화된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주민들의 실질적인 공공성 확보 보다는 시정 홍보 차원에 더 힘을 쏟는 문제 등이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일상과 그로인해 형성되는 문화, 오랜 시간이 지나며 두텁게 쌓이는 역사 등에서 형성되는 도시의 문화적 가치를 간과한 결과이다. 오늘날의 “중앙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만이 아니라 비영리 단체들, 심지어는 개인의 삶조차도 마치 기업경영처럼 운영되어야 성공인 듯한 사회 분위기”2)속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경제적 가치가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일상생활이나, 문화, 역사, 환 경 등은 부차적 가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텅 빈 00’을 우려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빵빵해서 아주 배부를 음식처럼 보이지만 한 입을 배어 무는 순간 텅 비어있는 속을 발견하여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공갈빵 같은 공공디자인, 다시 말해서 화려한 소리와 모습으로 등장하며 삶의 공간을 휩쓸었지만 정작 핵심은 없는 텅 빈 공공디자인! 으로 향하고 있지 않나 하는 염려가 이는 것이다. 실제로 공공디자인 관련 사업이 2009년에 비해 점차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최근의 소식이 바로 이 문제를 반영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꽉 찬 ‘00’을 꿈꾸며
눈앞의 경제적 이윤을 얻고자 하는 욕망, 화려함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공에 대한 피상적인 인식 등은 조급하고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키게 만들기 쉽다. 그러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은 그와 같은 의도와 방식을 통해 아름답게 변화할 만큼 간단하지 않다. 이곳은 생각과 취향과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른 ‘너’가 함께 살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그 안에서는 크고 작은 충돌과 변화가 수없이 일어난다. 서로 다른 시간과 다양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곳일 뿐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예민하게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어 가야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여기가 ‘사회’라는 곳이다.

사회를 위한 디자인! 다시 말해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이롭게 하고 돕는 디자인이 과연 무엇일까? 아마 그 디자인은 경제적 가치 추구에 종속되지 않고, 대신 그에 가려져 있는 일상이나 문화, 역사, 생태환경 등을 중요하게 고려하며, 문화적 가치의 지위를 회복시키는 데 애를 쓸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디자인이 힘을 가질 때에 텅 빈 ‘00’대신, 속이 꽉 찬 ‘00’을 향한 꿈이 가능하지 않을까?

글 : 채혜진 (건국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과 박사과정)




1) “사회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society). 이것은 디자인과 관련하여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의제나 쟁점으로 떠오른 주제를 의미한다.” 강현주 외 「디자인 사회」,『2009디자인 백서』, 문화체육관광부 p.234
2) 강현주 외 「디자인 사회」,『2009디자인 백서』, 문화체육관광부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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