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르는

조직신학 두 번째 시간

chae. 2012. 5. 10. 15:42

두 번째 시간


두 번째 시간은 ‘하나님을 아는 것의 중요성과 그 의미’, 그리고 ‘하나님 존재 자체의 유무에 대한 논쟁과 증명’,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다. 신론·인간론·죄론·기독론 등과 같은 조직신학의 여러 주제 중에서 하나님에 대해 다룬 <신론>의 첫 번째 시간이었다.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그냥 아는 여자였던 사람이 그에게 점점 특별한 여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여기서의 ‘아는’은 오히려 그다지 친밀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냥 그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정도의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는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을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객관적 사실을 아는 게 아닌, 하나님과 전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나와 세상을 정확히 알게 되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나와 세상과 실천적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하나님을 알고 있니?”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당당하게 “응”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전인격적으로, 즉 지적으로도, 체험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골고루 알아가는 데 있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부분이 부족한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구체적 내용 중,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실 조금 거리끼는 부분이었다. 삼위일체라는 게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의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없지만 이를 지지하는 내용은 성경에 충분히 있고, 때문에 표현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교수님의 설명에 수긍이 갔다. 역사적 논쟁이나 교리적 설명에는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는데, 삼위일체의 의미와 적용, 특히 관계와 연결 짓는 관점은 흥미로웠다. 성부 성자 성령간의 관계, 그리고 피조물에 그대로 적용되는 이 관계의 형상! 이것은 이 땅에서 피조물로서, 피조물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관계를 맺고), 또 나와 세상을 하나님이 알려주신 대로 아는 것(관계를 맺는 것)이 이 땅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옳은 또는 행복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삶에서 차근 차근 확증되기를 바란다.